본문 바로가기

연재소설-水磨兜本

[연재소설] 水磨兜本[수마두본] - (2) 어불궁금, 수태부잡수




1편 - http://wuuz.tistory.com/31 


 

 쌀국 남동쪽 변두리에 자리하고 있는 생부현은 한때 기름진 땅으로 인구가 5만명에 가까웠지만 흑전단(검은무전단)의 잦은 출몰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곳이다. 생부현에 생부라는 이름은 ‘생부람시수고(生父覽時水高)’에서 유래하는데 일화는 다음과 같다. 생부현의 곡식이 무르익어 추수가 한창일 때 쌀국의 황제가 그곳을 지났다고 한다. 생부현의 농사가 너무나도 잘된 나머지 온통 노란빛으로 무르익어 있자 황제가 마을청년에게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마을 청년은 생부현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계곡을 가리키며 저 높은 곳에 맑은 물을 매일같이 퍼다 논으로 나른다고 답하였다. 그러자 황제는 그 노력에 감탄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선물하였다고 한다.

 

生父覽時水高(생부람시수고)

大學懶臥道(대학나와도)

中退霞綾揭(중퇴하능게)

要怎大勢野(요즘대세야)

 

무릇 사내로 태어났다면 때에 맞춰 높은 물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대학을 공부한다고 하여도 도를 게을리 하면

중간에 나와서 노는 것보다 현명하지 못하니

어찌 들판의 큰 세를 구하지 않으리요.

 

 그때부터 시의 첫 부분을 따서 생부(生父)현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아직도 그 시는 현감의 집에 필사되어 마을 청년이면 아침마다 시를 읽고 본업에 나선다고 하니 훌륭한 학자가 다수 배출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 생부현 현감의 집에서 5리쯤 떨어진 북쪽 산기슭에 리두(理頭)학당에는 더운 여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자세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백성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나서 그들에게 바로 그 것을 줄 수는 없다. 어리석은 자가 그 것을 줄 때쯤이면, 백성들은 뭔가 새로운 것을 요구할 것이다.

현감이 되려거든 단순히 관리를 잘하면 되지만, 세상을 경영하려면 깊이가 최우선이다. 학문의 깊이가 모든 것을 대변하는 환경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이들은 안타까움을 안겨준다.“

 

 한창 학생들에게 설파를 하고 있는 선생의 이름은 지한, 자는 부비(浮費)로 일천현이 고향이었다. 어려서부터 사서삼경을 독파하고 쌀국의 최고 학당으로 일컬어지는 하부두(河埠頭)학당에서 훗날 최고의 학자들과 동문수학을 했다고 한다. 그의 가르침은 늘 한결같이 바르고 어조는 늘 부드러웠다. 그의 심성은 굳세었지만 약한 자를 보고 위로할 줄 알았다. 하부두학당에서 수학한 후에는 쌀국의 녹을 먹고 전국적인 산적 세력을 토벌하여 그 재주가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염세(厭世)하여 지금은 학문에 정진하고 젊은이들에게 가르침을 줄 뿐이었다.

 

“백성들은 늘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변화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다. 너희들은 이 말을 늘 가슴속에 새겨야 한다. 인호배이선(人豪培異線 : 인품이 뛰어난 호걸은 늘 남다른 선이 있다.), 인호배이선!”


그러나 아까부터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한 제자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스승님 백성들이 늘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낱 어린아이가 부르는 노랫소리에도 시정잡배가 언론을 속이기 위하여 붙여놓은 방 하나에도 변화하는 것이 민심 아니겠습니까? 어찌 미래를 읽고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질문을 하는 자의 이름은 ‘변철’ 자는 살성이었다. 이씨성을 가진 그의 집안은 대대로 생부현에 자리잡고 있던 대지주였다. 흑전단에 의해 가문이 몰락하여 지금은 국수공장을 하고 있지만 가문의 명성답게 귀족적이고 학식이 높았다. 일찍이 그의 부친과 지한선생은 같은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었지만 그의 부친은 중퇴를 하여 농장을 경영하였기 때문에 왕래는 많지 않았던 터였다. 지한선생이 속세를 떠나 학문을 연구한다고 하자 가장 먼저 연락을 취한 것은 그의 부친이었다. 이미 대지주로 자리를 잡은 변철의 부친은 지한선생을 모시고 와 집과 학당 그리고 책들을 마련해주었다. 학문을 통해 마을의 부흥을 꿈꾸었던 것이다.

 

지한선생 : 재미있는 질문이로구나. 그래 꼬마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지한 선생이 꼬마라고 부르자 학당의 시선은 단번에 구석으로 몰렸다. 학당에서 가장 어리고 왜소한 한 아이를 부르는 명칭이었기 때문이다. 몇일이나 못 먹고 지냈을까 피골이 상접한 모습에 왠지 거죽만 걸친 듯한 검은 윗옷을 입고 있는 자의 이름은 수태. 훗날 수태부잡수라고 불리는 자다. 변철의 질문을 받고 수태에게 질문을 던지는 지한선생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변철의 학식에는 비할 바 못되지만 왠지 모를 기대감을 갖게 하는 수태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변철과는 극명하게 비교되는 모습에 더 호기심을 가졌을 법하다.

 

수태 : 제가 믿는 것은 직관입니다.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가는 데로 따르는 것입니다.

 

수태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는지 학당 안에는 피식피식 웃는 소리가 들린다. 몇몇 학생은 소곤대기까지 한다. 그러나 지한 선생은 호탕하게 웃으며 인자한 미소로 수태를 바라보며 말한다.





.... 3부 계속